집사일기 #22.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싫어하고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낮에 보는 푸르고 높은 하늘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술을 마시고 약간 알딸딸해진 채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집까지 걸어오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여름은 유난히도 길었다. 여름이 30도 이상의 온도를 뜻하는 것이라면 이곳은 이미 4월부터 여름이었고, 집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면, 라마단이 시작된 5월부터 여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올해 초부터 첫째 고양이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

온종일 집에 붙어있어야 했던 나에게도 행복한 순간은 있었다. 나와 남편의 노력을 통해 첫째가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내내 웅크리고 숨어있던 첫째였다. 가졌을 때는 몰랐던 그 행복한 시간. 우리는 어느 날 첫째가 더는 우리가 밥 먹는 것을 지켜보지도, 밥 먹는 동안 다리에 비비적거리며 지나가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불가능하리라 생각하면서도, 다시 첫째가 그렇게 행동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신기하게도 첫째는 그 말을 한 지 이틀 후부터 우리가 밥 먹는 동안 조심스레 다가와서 애정을 표하고 지나갔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나 또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에만 기대하는 것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행복함을 느끼는 게 더 소중하다고 느끼는 사람 중 하나이다.

남편과 함께했던 여름을 되돌아봤을 때, 나에게 떠오르는 행복한 광경이 딱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좁디좁은 원룸에서 카스 맥주, 값싼 프랑크 소시지와 허니 머스타드 소스를 사다 놓고 당시 유행하던 미드를 봤던 것. 그 소시지는 이마트에서 구할 수 있었던 가장 싸고 양 많은 제품이었는데, 쇠젓가락에 끼워 칼집을 내서 가스 불에 구운 후 허니 머스타드에 찍어 맥주와 함께 먹던 그 시간은 10년이 훌쩍 넘어도 잊을 수 없다.

두 번째 기억은 딱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빛 공해, 소음 공해, 공기 오염에서 벗어나 조용한 동네로 이사했다. 9월 초가 되자 작은 방에서 개구리 울음소리, 귀뚜라미 울음소리, 냇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숲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마치 먼 곳으로 MT를 온 것만 같은 기분에 그 몇 해 늦여름과 초가을 밤엔 그 방에서 작은 상을 펴고 창문을 활짝 연 채 술을 마셨다.

그러고 보면 올해 여름도 행복했다. 정원에 나가고 싶어 하는 첫째와 둘째를 위해 문을 열어뒀는데, 그 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려 긴 비닐로 틈을 막아뒀다. 그 비닐은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가 났는데, 소파에 누워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치 몰디브 어느 해변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눈을 뜨면 정원의 뜨끈한 바닥에서 등을 지지는 고양이까지 덤으로 볼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첫째의 상태가 부쩍 좋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건사료이긴 하지만 혼자 밥도 먹고, 둘째와 우다다도 하고, 우리에게 놀아달라며 상자에 뛰어들어갈 정도였으니까. 기존에 다니던 병원은 신부전에 필요한 몇 가지 검사항목을 수행할 수 없어 며칠 전 새로운 병원에서 다시 검사했고,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첫째는 6개월 남짓 남은 신부전 3기 말의 고양이가 아닌, 4년가량 살 수 있는 신부전 2기 초의 고양이라고 한다. 아마도 검사 당시에 극심한 탈수를 겪었던 것 같다고. 당시에도 처음엔 급성 신부전을 염두에 두고 3일간의 정맥 수액 후에 치렀던 재검임에도 높은 크레아티닌 수치를 보여 만성 신부전 3기라고 예상한 것이었는데, 너무나도 의외였다. 다만 요단백 수치와 혈압이 높아 그 부분은 다음 주에 재검 후 여전히 문제가 되면 치료에 돌입하기로 했다.

더는 강제급여와 피하수액을 하지 않기로 했다. 첫째를 계속 지켜보긴 할 것이지만,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진정한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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