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기 한명이 찾아왔습니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던 그가 어느날 휴학한 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전공을 살려 좋아하는 일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늘 설렌다 말하던 그의 첫 시작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천진난만한 그의 외면과는 달리 속에는 늘 가족을 향한 책임감으로 가득차 있던 그를 보며 항상 안쓰러운 마음과 응원의 마음이 공존하던 저였습니다. 한 살 어린 동생인 저를 늘 걱정해주는 그였지만 정작 본인의 고통은 잘 내뱉지 않는 사람인지라 더욱이 그날의 방문이 궁금해졌습니다.
밴치에 앉아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동안의 삶과 앞으로의 삶, 그리고 저를 향한 걱정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장난스럽게 여러가지를 주고받다 그가 문득 내뱉았습니다.
나는 이제 사람이 두렵다,
이제 사람이 무서워.
어린나이에 시작한 사업가운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참아가며 그동안을 살아왔던 그. 어리다는 이유와 갖가지 이유로 느낀 모멸감에 사람이 두려워지고 자신의 개성을 펼치기 보다 사업주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 현실 가운데 자신감까지 잃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어깨펴고 당당하게 걸으라고 말해주던 누구보다 멋진 그 사람이 이제는 바닥 끝까지 자신감을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가벼운 슬럼프겠지라며 입으로는 반복하지만 그의 눈은 자꾸만 흔들렸습니다.
21살 때 대학 선배로 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들었습니다. 비가왔던 오늘의 시퍼런 하늘처럼 제 마음 또한 그렇게 멍들었던 그때의 시간들이 너무도 또렷이 떠올랐습니다. 삶을 다시 일으키는데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던 그 때의 넘어짐은 다른 어떤것도 아닌 사람 때문이었기에 동기의 마음이 사무치게 이해되었습니다.
그가 저를 찾아온 것은 바로 그런 저를 알고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관계의 깨어짐과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던 어린 저의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봤던 그는 저의 일어섬 또한 보았습니다. 그에게도 그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용기를 낼 용기조차 없는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 뿐이었지만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응원하려 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누구나 겪는 것이다. 살면서 그런 일 한번 안겪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데인 상처는 언제나 아픕니다. 물론 경험의 유무와 깊이에 따라 치유의 속도는 달라지고, 굳은살은 생길 것이나 처음의 깨끗한 피부처럼 말끔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끝으로 이 글을 쓴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단순한 그의 아픔 때문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20대의 청년, 취업이 아닌 자신의 길을 걷는 그가 살며 겪어야 할 더 큰 아픔들이 저를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부디 지혜롭게 이겨내길 바라지만 그것이 아닌 사회의 부조리함에 상처받은 마음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야 할지 깊이 고민이 됩니다.
또다른 고민이 생겼지만 살아가면서 어쩌면 당연히 해야하는 이 고민들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조금 더 나은 방법으로 극복해 나가기를 바라 봅니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은 누군가 있다면 부디 힘내시길 응원합니다.
Co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