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힘내라는 개소리 - 하



2편 짜리 단편소설. 오늘이 마지막 하편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1편 보기 - [단편소설] 힘내라는 개소리 - 상




해가 지려는지 하늘이 붉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바라보고 있기가 미안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눈빛이 그 오묘한 색을 더럽힐 것만 같았다. 한참 지는 해를 보고 있던 그는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흘이 넘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그녀에게. 혹은 그녀의 아들에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긴 소매 위로 손목을 만지작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를 찾아야 했다. 찾아서 그녀가 무사하다는 걸 두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설마. 그는 불길한 생각을 쫓으려는 듯 고개를 힘차게 젓고는 목발을 내딛었다.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몰랐기 때문에 헤어질 때면 그녀가 늘 걸어내려가던 아랫동네 방향으로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이런 막무가내 방법으로 그녀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 별달리 방도가 없었다. 지난 두어달 동안 그와 그녀는 매일 만났지만 서로 개인적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만나면 짧은 인사만 건네고는 멀뚱히 지는 해만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나이는 몇인지, 아이는 혼자 키우는지, 깨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그는 캐물어보지 않았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리는 어쩌다 다쳤는지, 왜 매일 이곳에 나오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손 내밀면 닿을 곳에 앉아 같이 한 곳을 응시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열흘 남짓 벤치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 그는 깨달았다. 그녀가 옆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는 걸. 그도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힘내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며 신중히 걸음을 옮겼다. 해도 저물었는데 남의 동네에서 길까지 잃고 헤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도 와본 적은 없는 곳이었지만, 이 근방의 가난한 동네들이 다 그러하듯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골목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그는 다시 길을 되짚어오기 편하도록 가능하면 옆길로 새지 않고 계속 직진을 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그녀를 찾아야 하나 막막한 심정으로 얼마를 내려오니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구멍가게라면 뭔가 알 수도 있을 터였다. 반가운 마음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는 순간 멈칫했다. 뭐라고 물어본단 말인가.

뭔가를 물어보려 해도 그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서로의 이름도 몰랐다. 그녀에게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미래는 이름이 없었다. 그가 다시 ‘강사’가 될 수 있을지, 어떤 ‘직업’을 가진 ‘가장’이 될 수 있을지, ‘남편’이나 ‘아빠’는 될 수 있을지. 자신의 미래에조차 이름을 붙일 수 없었는데, 그녀의 이름을 아는 게 무슨 소용인가.


가게 안에서는 주인 할머니가 오래된 작은 TV를 보고 계셨다. 가게도 무척이나 작았는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선반들이 비좁은 통로를 만들고 있었고, 그 위에는 역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건들이 빼곡히 쟁여져 있었다. 그는 여전히 TV만 보고 계신 할머니 앞에서 짐짓 헛기침을 했다.

“저기, 말씀 좀 여쭐게요.”
“뭔디.”
할머니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씀하셨다.
“사람을 좀 찾는데요. 나이는… 젊고, 그러니까 한 이십대 초반쯤? 좀 마르고, 여잔데.”
“빚쟁이여?” 할머니가 그제야 그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친군데, 요새 통 안 보여서요.”
할머니는 잠시 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차, 친구라고 하는 게 아니었나? 이름도 모르는 친구라니.
“그렇게 말해서 사람을 어찌케 찾어? 젊고 마른 여자가 어디 한둘이간디?”
얼굴에 열기가 확 올랐다. 더워서인지 힘들어서인지 이마에 땀도 흐르기 시작했다.
“그, 아픈 아들이 하나 있고요. 항상 긴 소매를 입고 다녀요.”
“이~ 쩌그, 기준이 엄마 말하나 보네.”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좁은 통로 틈에서 라면과 과자 봉지를 든 중년의 아줌마가 선반을 안 건드리게 조심하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아~ 기준네. 기준네는 왜?”
“요새 연락도 안 되고 통 만날 수가 없어서요. 집이 여기 어디라고 했는데.”
“아고~ 이 총각이 소식을 모르는갑네. 기준네 장사치렀잖여.”
통로를 빠져나온 아줌마는 라면과 과자를 할머니 앞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거 아들이 죽어가꼬. 그 어린 것이 차암 안 됐어.”
아줌마는 혀를 끌끌 찼다.
“벼...병원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가 말을 더듬자 이번엔 할머니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병원에 있으면 뭐혀? 죽은 목숨 호스로 연결만 해 놓은 거. 죽기는 진작에 죽었디야. 기계로 그냥 억지로 숨만 붙여놓은 거지. 그 어린 게 결국 못 버티고 저세상 갔잖여.”
“뺑소니라고 그랬죠, 형님?”
“하여간 술 처먹고 운전하는 것들은 죄~ 잡아서 족쳐야 혀. 씨부랄것들.”
할머니는 분이 안 풀린다는 듯 입을 씰룩거렸다.

온몸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깨어나지 못하던 아들이 죽었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친정 가서 살 거라고 들은 거 같은디. 형님, 아셔요? 벌써 갔나?”
“아니여. 아까 낮에도 왔다 갔어. 가뜩이나 마른 게 그냥 얼굴이 시~커매져갖고 넋이 나갔드만. 쐬주 한 병 사갖고 갔어.”
“쐬주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니다. 아닐 거다. 설마.

‘술 마시면 돼요. 여전히 겁나죠. 근데 겁나는 걸 잊어버려요. 취해서.’

“그기 속이 속이겄어? 술이라도 마셔 줘야재.”
그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 입이 바싹 말랐다.
“할머니, 기... 기준이 엄마 어디 사는지 아세요?”
“저기, 옥탑방 살죠, 형님?”
“이, 저~짝으로 쪼매만 올라가면 경인 세탁소라고, 그 우짝 골목으로 쑥 들어가야 되는디.”

아까 내려오던 길에 봤었던 세탁소다. 그는 아줌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게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심장이 너무 두근대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는 땀에 젖어 축축해진 손으로 목발을 꽉 움켜잡았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세탁소 윗골목은 모두 좁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옥상에는 거의 다 옥탑방이 있는 듯했다. 이중에 어느 집이 그녀의 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골목이 맞기는 한 건가? 바둑판처럼 명확히 나뉜 곳이 아니라 세탁소 윗골목이 여긴지, 이 다음 골목인지도 헷갈렸다.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어둑해진 거리에서 그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길 양쪽의 옥탑방들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보기만 하면 그녀의 집을 대번에 알아차리기라도 할 것처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어두운 방안을 응시했다. 시계가 없으니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시계만 없는 게 아니었다. 비닐 커버로 된 작은 옷장도, 앉은뱅이 책상도, 그 위에 널브러져 있던 아이의 장난감도 모두 없었다. 짐을 다 빼서 텅 빈 방 안에는 그녀와 아직 뚜껑을 따지 않은 소주병 하나만 놓여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세간살이는 낮에 트럭에 태워 친정으로 보냈다. 주인 아줌마에게 보증금만 받으면 뒤따라 내려갈거라고 안심시켜서 친정 엄마를 먼저 보냈지만, 실은 보증금도 진작에 다 까먹고 없었다. 이 콩알만한 옥탑방에 남은 거라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참에 놓인 화분 하나뿐. 3년 전 이곳으로 이사왔을 때 키친 타올에 돌돌 만 면도칼을 그 화분 밑에 숨겨 놨었다. 언젠가 다시 쓰려고 거기에 놔둔 건 아니었다. 그건 그녀에겐 일종의 부적 같은 거였다. 세상살이가 막막할 때마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화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있다는 묘한 위안이 되곤 했다.

그녀는 왼쪽 소매를 살짝 들췄다. 항상 긴 옷으로 가리고 다녔던 오래된 흉터. 네 가닥의 불그스름한 상흔이 손목 위에 저주의 징표처럼 아로새겨져 있었다. 실패의 흔적. 마치 그녀의 삶처럼. 이제 그 부적을 쓸 때가 온 것 같다.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학업도 채 마치지 못하고 십대 미혼모로 살아오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저놈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이러지 않았을 거라고. 모든 게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반대였나 보다. 그녀가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던 게 오히려 그 아이 때문이었나 보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손에 힘이 없어서 병뚜껑을 여는 게 힘들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몇 번 헛손질을 하던 그녀는 병을 다시 바닥에 내려놨다. 뚜껑을 어떻게 열지.

그때였다. 문득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점점 커지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멍하니 창문쪽을 보고 있는데, 커졌던 소리는 반대쪽으로 지나가며 작아지고 있었다.

그건 분명 개가 짖는 소리였다. 사람이 내는 개 짖는 소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핑하고 어지러웠다. 벽에 손을 짚고 잠시 서 있는데 멀어진 줄 알았던 소리가 다시 이쪽으로 오며 커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개 짖는 소리를 내며 골목을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선가 짜증난 고함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해, 병신새끼야! 술 처먹었으면 곱게 들어가서 잘 것이지!”

머리 속이 웅웅 울렸다. 누가 머리 속에서 북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서둘러 신발을 발에 꿰찼다.


그녀가 대문밖에 나왔을 때 개 짖는 소리는 벌써 저만치 가 있었다. 누군지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발을 짚고 있었다. 골목의 끝에 다다른 그는 방향을 바꿔 다시 이쪽으로 향했다. 그는 시종일관 길 양쪽에 늘어선 집들의 옥상을 살피느라 고개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목발을 내밀어 딛고, 오른발을 옮긴 다음 멍멍멍! 짖으면서 왼쪽 옥상 한번 쳐다보고, 오른쪽 옥상 한번 쳐다보고. 목발, 오른발, 멍멍멍! 목발, 오른발, 멍멍멍! 그렇게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왼쪽 2층에서 창문이 열렸다.
“조용히 해, 미친 새끼야! 경찰 부르기 전에!”

뭔가가 욕설과 함께 날아와 그를 맞추고는 깡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그 사내는 다시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가만히 서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잠시 누르던 그는 이내 목발을 잡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어걸음 걷던 그가 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그녀를 발견한 것이다. 양 옆의 옥상만 바라보느라 그녀가 길에 나와 있는 걸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목발, 오른발, 목발, 오른발. 그가 다가올수록 가로등 불빛 아래 그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돼있었다. 앞머리는 땀에 젖어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빨간 자국이 선명한 오른쪽 눈썹 위는 벌써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뭔가 말을 하려 입을 열었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목발을 짚어 걸음을 옮기던 그는 서너걸음 앞에서 멈춰섰다. 충혈된 눈, 밤보다 더 어두운 얼굴. 앙상하게 마른 그녀의 몸을 보자 속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긴 소매의 티셔츠가 그녀라는 옷걸이에 걸쳐져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녀를 찾긴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그는 목을 메우고 있던 뜨거운 것을 힘겹게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멍멍멍!”
어디선가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밤중에 시끄럽게 지랄이야?”
그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멍멍멍!”
그때였다.
멍멍멍. 왈왈왈. 컹컹컹.

여기저기서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동네의 개들이 다 짖기 시작했다.
멍멍멍. 왈왈왈. 컹컹컹.

“에이, 씨팔. 동네 똥개들 다 깨워놓고!” 그 사내는 온동네 개들을 다 조용히 시키기엔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창문을 닫고 안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그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버려진 공터의 벤치에 앉아 있던 때처럼 그녀를 기다려줬다. 힘들었는지 거친 숨소리에 맞춰 그의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했다. 그녀는 바싹 다가가 그의 가슴에 가만히 머리를 기댔다.

멍멍멍, 왈왈왈. 컹컹컹.
수많은 개소리에 감싸인 채 그녀의 어깨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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