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가출?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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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요일 점심, 아버지께서는 나와 단둘이 레스토랑에 가자고 하셨다.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앉아 어색함이 흐르는 식탁이었다. 주문했던 인절미 피자와 치킨 샐러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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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먹기에는 많은 양이다. 특히 인절미 피자는 떡이라서 포만감이 더 크다. 왜 이렇게 많은 양을 시키셨을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쳐 지나간다. '일단 생각하지 말고, 먹고 보자.'
#2
"한손아, 아빠가 보기에 한손이는 절실함이 없어 보여.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시험을 치르면서 낭인이 될 생각은 아니잖니?" (낭인(浪人): 일정한 직업이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빈둥빈둥 노는 사람.)
"그럴 생각은 없어요."
"작년에 공부 시작할 때, 애인과 헤어진 것 말고 달라진게 뭐가 있니? 너는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모든 걸 손에 쥐고 있으려고 하는 거야. 지금은 시험공부 이외에는 전부 버려야 해.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오로지 공부만 생각해도 합격을 할까말까인데, 왜 버리지 못하는 거니. 스트레스? 그런 생각도 할 틈이 없어야 하는 거야."
"..."
(참고로 저는 취미가 다양한 편입니다. 손글씨는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3
월요일 점심, 어제부터 머릿속으로 되뇌던 말들을 정리해본다.
"아빠, 말씀드릴게 있어요. 사실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워요. 저는 오늘부터 집을 나갈 거에요. 처음에는 말 없이 나가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아시게 될 테고 반항심에 가출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말씀드리고 나가려고 해요. 제가 어디를 갈지, 어떤 것을 할지는 정했어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는 않을 거에요. 제가 공부를 계속하든, 사업을 하든, 취업을 하든 주도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살아왔던 과거를 돌이켜보니 크게 고생해본 적 없이 무난하게 흘러왔던 것 같아요. 제 통장으로 용돈을 보내지도 마세요. 제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감, 절실함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에 대해서 조언도 하지 마세요. 무의식적으로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요."
"그래, 아무것도 묻지 않으마. 다만,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말고, 네가 선택한 것에만 몰두해라. 그리고 세상 모든 일에 쉬운 것은 없다는 사실만 기억해둬라."
"(고개를 끄덕이며)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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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옷과 필기구 그리고 기타 생활용품 정도만 간단하게 챙겨서 나왔습니다. 필기구가 있으니 손글씨는 쓸 수 있겠네요. 저는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제 인생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결정을 했을 뿐입니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략 2개월 전에 손으로 썼던 문장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손글씨]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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