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42. 섬에 있는 서점 by 개브리얼 제빈 - 책, 서점, 그리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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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었다. 내 남은 인생 따위. 될 대로 되라지.


뉴욕 근처에 있는 엘리스 섬, 그 안에서 작은 서점을 하고 있던 니콜이 죽었다. 이제 홀로 남은 그녀의 남편 A. J. 피크리. 성격도 꼬장꼬장하고, 고집 세고, 책 읽는 것만 좋아하는 별난 피크리는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버리자 그는 더이상 살아갈 의지도 이유도 찾지 못했다. 서점 사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사교적이지 않아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별로 없다.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줬던 아내가 없는데, 더이상 살아서 무엇하리.

내 남은 인생 따위. 그냥 되는 대로 사는 거야.

그의 이런 야심찬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누군가가 그의 가게 앞에 아이를 놔두고 가버린 것이다.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는 (그리고 위탁 입양 시설에서 이 섬까지 들어오는) 72시간 동안 얼결에 두살배기 아이를 돌보게 된 피크리.


“Luft you.”
“What?”
“Love you,” she says. “You’re clearly responding to the power of a cappella.” She nods. “Love you.” “Love me? You don’t even know me,” A. J. says. “Little girl, you shouldn’t go throwing around your love so easily.” He pulls her to him.
“We’ve had a good run. This has been a delightful and, for me, at least, memorable seventy-two hours, but some people aren’t meant to be in your life forever.” She looks at him with her big blue skeptical eyes. “Love you,” she repeats. (p. 63)

"사양해."
"뭐?"
"사랑해." 아이가 말했다.
"너 아카펠라 노래 듣고 따라하는 구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해."
"날 사랑한다고? 넌 날 잘 알지도 못하잖니." A. J.가 말했다. "꼬마야, 그렇게 쉽게 사랑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면 안 돼."
그는 아이를 끌어당겼다. "우리 지난 시간은 괜찮았지. 즐거웠어. 적어도 내게는 잊지 못할 72시간이었단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네 삶에 영원히 머물지 못하는 운명이야."
아이는 크고 파란 회의적인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사랑해." 아이가 또 말했다.


아이를 목욕시키는 동안 틀어놓은 노래 가사를 아이가 따라했다. 수건으로 몸을 말리고,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히는 동안 아이가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랑 고백(?)을 먼저 한 건 아이인데, 마음이 흔들리는 건 피크리 씨다.

묘한 일이었다. 냉장고엔 순 쓰레기 같은 즉석 냉동식품 밖에 없고, 돈벌이도 안 되는 작은 서점을 하고 있는, 사교성도 없는 괴팍한 나 같은 놈이 아이를 키울 순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아이에게 점점 마음이 갔다. 벌써 알파벳도 다 알고 있는 나 같은 책 덕후가 될 소지가 다분한 사랑스러운 꼬마아이를 누군지도 모를 위탁 입양 시설에 맡길 순 없었다.

그는 그렇게 이 아이를 맡아 키우게 된다.



책, 서점, 그리고 사람들


제목에도 있듯이 이 책은 서점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안에 있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책들을 읽고 서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상의 시대로 넘어간지 오래된 지금, 책, 출판사, 서점, 작가, 이런 이름들은 왠지 앤티크 샵 한쪽에 진열되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책에선 다르다. 서점 주인은 책을 사랑하고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준다. 사람들은 북클럽을 만들어 서점 한 곳에서 모임을 갖고, 새 책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책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들(책방 주인인 피크리, 그 책방에 나타난 두살 꼬마 마야, 출판사 영업사원인 아멜리아, 피크리의 처형인 이지, 피크리의 친구이자 경찰인 램비에이스.) 모두 책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난 원서로 읽었는데, 이 책 속에 나온 내용을 100%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책에는 무척이나 많은 다양한 책들과 책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 중 내가 모르거나 안 읽은 책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이랄지, <호밀밭의 파수꾼>, 로알드 달과 앨리스 먼로 정도는 나도 알아들었지만, 솔직히 책 속에 언급된 모든 책과 등장인물들을 다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감동을 받은 데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한글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 책의 번역본에서는 역자가 친절하게도 수많은 책 제목과 등장인물들을 역주를 통해 알려주고 있으니까. 인터넷으로 번역본 앞부분을 미리보기로 잠깐 볼 수 있었는데 번역도 (내 기준에서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책과 서점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다 읽고 나면 동네에 이런 따뜻한 서점 하나 없다는 게 너무 서글퍼지는 책, 전국 서점 순례라도 다니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무엇보다도 주위에 권해준 뒤 함께 책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He tried to avoid meeting the ones who’ve written books he loves for fear that they will ruin their books for him. (p. 37)

그는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쓴 저자들은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막상 저자들을 만나면 책의 감동이 훼손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2.

Problems, Mr. Fikry. To begin, it is narrated by Death! I am an eighty-two-year-old woman and I do not find it one bit pleasurable to read a five-hundred-fifty-two-page tome narrated by Death. (p. 46)

...

“Yes, I read it,” she replies. “I most certainly did read it. It kept me up all night, I was so angry with it. At this stage of my life, I would rather not be kept up all night. Nor do I like to have my tears jerked at the rate at which this novel jerked them. The next time you recommend a book to me, I hope you’ll keep that in mind, Mr. Fikry.” “I will,” he says. “And I do apologize, Mrs. Cumberbatch. Most of our customers have rather liked The Book Thief.” (p. 46)

"문제들이 뭐냐면요, 피크리씨. 일단 책의 나레이터가 '죽음의 사신'이더군요! 내 나이가 여든 둘인데, '사신'이 떠드는 소리를 552페이지 씩이나 읽는 건 하나도 즐겁지가 않다구요."

...

"네, 읽었죠." 그녀가 대답했다. "분명히 다 읽었어요. 책 읽느라 밤을 새서 그것도 화가 나요. 이 나이에는 밤을 새는 게 안 좋다고요. 이 책 읽으면서 눈물 콧물 쏙 뺀 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다음번에 저한테 책 추천해주실 때는 이 점을 꼭 명심해주세요, 피크리 씨."
"네, 그러죠." 그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컴버배치 부인. 대부분의 다른 손님들은 '책도둑'을 좋아하셨거든요."

책방 주인으로서 책을 손님들에게 추천해줬던 피크리 씨. 그런데 컴버배치 부인이 <책도둑>을 읽느라 밤을 새고, 슬퍼서 엉엉 울었던 게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고 따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책도둑>을 추천하며 독후감(책도둑 by 마커스 주삭 - 모든 것은 책 속에 있다. 희망도, 길도, 구원도.)을 썼었는데. 따지시는 분들께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겠다.

3.

She was pretty and smart, which makes her death a tragedy. She was poor and black, which means people say they saw it coming. (p. 58)

그녀는 예쁘고 똑똑했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은 비극이었다. 그녀는 가난한 흑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죽을 줄 알았다고 했다.

4.

At first, he thinks this is happiness, but then he determines it’s love. Fucking love, he thinks. What a bother. It’s completely gotten in the way of his plan to drink himself to death, to drive his business to ruin. The most annoying thing about it is that once a person gives a shit about one thing, he finds he has to start giving a shit about everything. (p. 76)

처음엔 이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이게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 빌어먹을 사랑, 그는 생각했다. 정말 짜증나는 일이지 않은가. 술에 빠져 살다가 죽기로, 사업은 망하게 내버려두기로 했던 그의 계획이 사랑때문에 완전히 어긋났다. 그중 가장 짜증나는 일은 일단 한 가지에 마음을 쓰기 시작하니까 세상 모든 일에 다 마음을 써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5.

And I felt like somewhere down deep inside him the person who wrote it must be there. That you couldn’t write such beautiful things and have such an ugly heart. But that is the truth. He was a beautiful writer and a terrible person. (p. 231)

난 그 사람 내면 깊숙한 곳에는 그 책을 쓴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사람이 이렇게 추한 심장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거라고. 하지만 그게 진실이었어요. 그는 아름다운 작가였고, 끔찍한 사람이었죠.

6.

In the end, we are collected works. He has read enough to know there are no collections where each story is perfect. Some hits. Some misses. If you’re lucky, a standout. And in the end, people only really remember the standouts anyway, and they don’t remember those for very long. No, not very long. (p. 249)

결국 우리는 단편 소설집이다. 그는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모든 단편이 하나하나 다 완벽한 단편 소설집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건 좋았고, 어떤 건 별로였다. 운이 좋으면 훌륭한 이야기가 들어 있기도 했다.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그런 훌륭한 것들뿐이고, 그마저도 그리 오래 기억하진 못한다. 그래, 그리 오래는 아니다.

7.

A place ain’t a place without a bookstore. (p. 256)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책은 영어 원서로 읽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제목: 섬에 있는 서점
저자: 개브리얼 제빈 (Gabrielle Zevin)
원서 제목: The Storied Life of A. J. Fik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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