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혐오발언, 주디스 버틀러

책_<혐오 발언>, 주디스 버틀러 지음, 1997년 작, 2016년 번역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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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참 어렵다. 책 끝에 '주요 개념/용어' 정리와 적지 않은 분량(p.305 - 348)의 옮긴이 해제가 없었다면 아마 이런 글조차 적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읽기 전과 읽고 난 후가 별로 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후반부에 있는 옮긴이의 배려 덕분으로 아래와 같은 짤막한 생각을 가져 볼 수 있었다. 서장 부분('우리는 왜 언어에 상처받는 걸까' - p.10 ~p.86) 정도를 읽어보고 너무 어렵다고 느낀다면 포기하지 말고 뒷부분의 '주요 개념/용어'와 옮긴이 해제만 읽기를 권한다. 참고 끝까지 읽어 봤지만 책을 덮고 나니 결국 남는 건 뒷부분의 저 두 챕터뿐이라 처음부터 이것만 볼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어, 표현과 행위 사이의 애매한 거리, 그로 인한 가능성

언어는 표현이지만 말하는 화자가 그가 표현한 대로 행동할 가능성으로 인해 행위를 전제한 표현, 즉 미래의 행위 가능성으로 인해 언어행위라는 용어를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언어에서 표현과 행위를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 발언을 다루는 데 있어 표현과 행위를 분리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표현이 곧 행위이므로 혐오 발언은 규제 대상이며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한다.

다른 입장에서는 표현과 행위는 구별되어야 하며, 표현의 영역에 있는 것만으로는 처벌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상위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이 명백히 위협 혹은 행위적이라고 간주된다고 생각할 충분한 정황이 있을 때만 규제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그들 입장에서 규제 옹호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언어라는 것이 표현과 행위가 완벽히 구별되지도 그렇다고 표현이 곧 행위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할 수 있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그런 맥락 아래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언어 사용자의 역할을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사용자의 의지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국가 권력에 의지하여 혐오 발언을 막아달라고 하는 것보다 우리 스스로 그런 혐오 발언이 힘을 가지지 못하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를 설명하고 논증하기 위해, 언어(특히, 발화)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고찰하며, 언어가 가진 그러한 특질들이 버틀러 자신이 주장하는 방식의 저항이 가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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