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가'와 '이따가'

'있다가'는 “사람이나 동물이 어느 곳에서 떠나거나 벗어나지 아니하고 머물다.”라는 뜻으로 주로 일정한 장소와 관련하여 사용되며, ‘이따가’는 “조금 지난 뒤에.”라는 의미로 주로 시간 표현과 관련하여 사용됨

어떤 심리학자는 평생 동안 훈련되지 않는 두 가지 감정이 있으니, 그것은 ‘외로움’과 ‘지루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단단하게 달라붙어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견고한 ‘고독’과 사는 것이 시들해졌을 때 찾아오는 ‘권태감’ 같은 감정이라는 것이지요.

우선 ‘외로움’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어느 순간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매우 특별한 감정이 아니어서,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언제든 쉽게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정현종 시인의 시 <어디 들러서>에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요.

거기 좀 가 있다가
어디 들러서
애들 있는 데 좀 가 있다가……
이런 말들은 당장 쓸쓸하다.
어디도 쓸쓸하고
좀도,
있다가와 갔다가도
많이 쓸쓸하다.
가고 오고가 다
하늘처럼 벌판처럼
가이 없이……

늙은 부부만 뎅그러니 남아 살고 있는 집에서 아내는 어느 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출타할 준비를 합니다. 그녀가 남편에게 남긴 말은 “거기 좀 가 있다가, 어디 들러서, 애들 있는 데 좀 가 있다가…….”였겠지요.

바로 그 순간 남편의 가슴에 쏴하니 밀려오는 것은 쓸쓸함……. ‘어디도’, ‘좀도’, ‘있다가와 갔다가도’, ‘가고 오고가 다’, ‘하늘처럼 벌판처럼’, ‘가이 없이’ 쓸쓸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고독은 먼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용수철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있다가’입니다. “거기 좀 가 있다가”나 “애들 있는 데 좀 가 있다가”에 공통으로 쓰인 ‘있다가’는 ‘이따가’라는 단어와 구별해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있다가’와 ‘이따가’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단어일까요?

먼저 두 단어는 품사가 서로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있다가’는 동사로, ‘이따가’는 부사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두 단어의 의미는 어떠할까요?

(1) ㄱ. 오징어는 전진과 후퇴만 아는 직진성 어류로 낮에는 100~200m 깊이에 있다가
밤이 되면 얕은 수면으로 올라와 소형 어류를 잡아먹는다.
ㄴ. 동치미는 이따가 입가심할 때나 먹고 곰국 물을 먼저 떠먹어야지.
≪박완서, 도시의 흉년≫

(1ㄱ)에 쓰인 ‘있다가’는 동사 ‘있다’의 어간 ‘있-’에 연결 어미 ‘-다가’가 결합한 형태로, “사람이나 동물이 어느 곳에서 떠나거나 벗어나지 아니하고 머물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1ㄴ)의 ‘이따가’는 “조금 지난 뒤에.”라는 의미로 쓰인 부사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토대로 할 때, ‘있다가’는 주로 일정한 장소와, ‘이따가’는 주로 시간 표현과 관련하여 쓰인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미상의 차이에 의해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두 단어 가운데 어떤 것을 써야 할지 혼동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그러한 사례입니다.

(2) ㄱ. 10분만 있다가 출발할게.
ㄴ. 택배가 1시간 있다가 온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있다가’는 주로 장소와 관련하여 쓰이는 말입니다. 그러나 (2)의 경우처럼 장소가 아닌 시간 표현과 함께 쓰인 경우, ‘이따가’를 써야 하는 건 아닌지 혼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ㄱ)의 경우, 10분만 머물다가 출발한다는 뜻을 나타내므로, ‘*이따가’가 아닌, ‘있다가’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또한, (2ㄴ)의 경우처럼 “조금 지난 뒤에.”라는 의미가 아닌 “얼마의 시간이 경과하다.”라는 의미로 쓰일 때에도 ‘있다가’를 써야 하니, (1ㄴ)의 사례에서와 같은 ‘이따가’의 의미를 분명히 아는 것이 요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있다가’와 ‘이따가’의 용법에 대해 한 가지를 더 언급하자면, 두 단어는 똑같이 준말형이 존재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있다가’는 ‘있다’로, ‘이따가’는 ‘이따’로 줄여 쓸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출처 : 다른 말과 틀린 말 (2016. 12. 30.)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Join the conversation now
Logo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