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타임'은 시간 여행을 하는 능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이다. 결국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은 돌릴 수 없게 되지만 따뜻한 마음을 저절로 품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다. 그런데 주식에 한창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내가 그 좋은 능력을 엉뚱한 데 허비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여러분이 2017년 1월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그런 동화에 만족할 것인가.
나는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모조리 받은 뒤 이더리움을 살 것이다. 이더리움을 $10에 10000개 사서 ICO에 돈을 뿌린다. 이더만으로 40배 올랐으니 40만불인데 Metal, Etheroll, OmiseGo, QTUM에 4등분했으면 얼마? 그 돈으로 7월에 오미세고에 몰빵했어도 100만불이 수중에 있을 것이다.
완전경쟁시장, 완전한 정보. 이런 단어는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것이고 어느 시장에서나 정보는 비대칭적이다. 주식 시장에서도 얼마나 개미들이 그런 농간에 놀아났던가? 하물며 법과 제도의 통제가 미치지 못한 이 원초적인 크립토 세계에서는 얼마나 심할까?
2017년 9월을 미리 살아본 사람 혹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중국의 ICO 규제와 몇몇 거래소가 폐지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OKEX에 수백 개의 계좌에 비트코인을 장전한다. 자 그럼 미리 숏을 쳐두자.
9월 1일 시작과 동시에 $5000을 넘는 듯 샴페인을 터뜨린 무리들에게 진정제를 먹인다. $5000에서 1차 벽을 세워 숏 물량을 매집한다. 비트코인은 하드포크 전 7월말 $2000에서 바닥을 강하게 치고 올라와 $5000까지 신고가를 갈아치우던 때였다. 빅쇼트를 위해서는 마켓 센티멘트부터 바꿔야한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누구보다 강성이다.
이튿날인 9월 2일, 중국 ICO 규제설이 나오고 주말 동안 불확실성에 휩싸인 시장은 $5000에서 $4200으로 폭락한다. 인민은행(PBoC)의 침묵은 길지 않았다. 9월 4일 '코인 발행을 통한 모금 리스크에 관한 공고'를 통해 ICO 전면 금지를 발표, “ICO는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공모행위”라며 “불법적인 자금 모집과 다단계(피라미드) 금융사기 등의 범죄활동과 연루돼 있다”고 지적했다. ($4474->3576)
슬금슬금 ICO가 뭐 어째서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게 바닥이라 믿는 불쌍한 중생들은 $4000에도 막 롱을 들어온다. 3일 동안 $3826->$4605.
그렇게 불안한 시장 속에서 9월 8일(금)에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이 중국 당국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이는 9월 11일(월)에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서양 언론에도 그대로 인용되었다. 이로 인해 마켓 센티멘트는 급속도로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숏 커버링+낙관론이 힘을 얻으며 시세를 많이 회복하는 모양새가 지속된다.
그 다음날, 9월12일(화)에는 중국 단톡방 위주로 거래소 폐쇄 찌라시가 돈다. 한국시간 17시 근처였고 이 때도 $400 가량이 일시에 빠졌었다. 시장은 극도로 불안해지고 폭락의 가능성을 본 투자자들은 함부로 매수나 롱 포지션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가격에 충격을 주려는 그들의 공사는 착착 진행되어간다.
라이트코인을 만든 찰리리는 트위터를 통해 그 다음날 9월 13일(수) 새벽 2시에 중국 쪽 확실한 소스로부터 거래소 폐지 루머는 사실임을 알렸다. 이를 본 투자자들은 동요했고 다시 한 번 비트코인 가격은 빠졌다. 찰리리를 성토하는 성난 군중들 위로 우지한이 나서서 그 사실을 확인시킨다. 추가적으로 양대 거래소는 폐쇄가 아닌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착한 고발자 찰리리는 그들의 눈에 훼방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찰리리는 이 트윗으로 투기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아 해당 트윗을 삭제했다. 그는 진정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
9월 13일(현지 시간 9월 12일)에는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비트코인은 튤립 버블과 같다며 사기”라는 망발을 퍼부었다. 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많은 기자들이 다이먼의 발언으로 인해 $400달러 떨어진 것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다이먼의 망언을 기다리는 판국이다. 그 이후에 비트코인은 더 올랐기 때문에.)
9월 14일(목) 저녁. 중국 3번째 거래소 BTCC 폐쇄 소식과 함께 묻지마 숏장이 펼쳐진다. 바닥을 착각한 롱잡이들은 마음이 급해지는데 공교롭게도 OKEX 서버도 다운된다. (한국 유저에겐 매우 익숙한 장면일 듯..) 서버가 다운되게끔 치밀한 계획 하에 실행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된다. 패닉셀은 그 가속도가 더해져 당일에만 $1000넘게 하락했고 30% 정도에 해당한다. 게다가 라이트코인은 $60 근처에서 $25까지 구경했다. 아마 이는 거래량이 더욱 없기 때문에 계획 하에 조작이 더욱 쉬웠을 것이다. 마진콜 물량은 셀 수 없었다.
길고 긴 이 빅쇼트 플랜은 거의 완성 단계에 왔다. 9월15(금) 오후, ViaBTC라는 잔바리 거래소 폐쇄 소식을 통해 충격에서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롱을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 뒤에 남은 모든 숏 물량을 청산한다. 그리고 그날밤 우지한의 트윗 이후 숏을 커버링+롱 매수 물량이 가격을 단번에 밀어올린다. 그날밤에 비트코인 선물은 $2500에서 $3500을 가볍게 넘겼고 라이트코인 선물은 $25에서 $50으로 직행했다.
다시 한 번 이 그림을 보자. 이들은 3주치 프로젝트로서 악재에 해당하는 뉴스는 알차게 써먹었다. 애초에 시장 정서가 매우 bulllish했기 때문에 이것을 먼저 바꾸기 위해서 중국 ICO 재료로 한번 겁을 주었고 언제나 그렇듯 시장은 금세 회복했으며, 여기서부터 차근차근 작업이 시작되었다. 중국이 거래소를 폐지한다는 루머는 사실로 확인되었지만, 모든 거래소 일괄 폐지가 아니라 거래소 하나하나 발표가 따로 이뤄졌다.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면 매우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방법이었다. 시장은 매를 얼른 맞고 다시 오르고 싶은데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계획은 끝났지만 여전히 정보를 선점한 잔당들은 $2500~$3000에서 롱을 대거 매수했을 거라 본다. 며칠 전 '비캐시의 난' 때 로저 비어가 25000BTC를 벌어 한번에 송금했다는 글을 보았다. 하물며 9월의 그 스케일이면, 그들은 정말 얼마나 번걸까? ASIC이건 뭐건, 채굴기 없이 그들은 얼마나 벌었을까?
OKEX의 하루 거래량은 25만개이다. 허수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 넉넉잡아도 25,000개로 20배 레버리지를 쓰면 하루 거래량 정도는 장악할 수 있다. 9월 2일 이후 뉴스가 없었던 1주를 볼린저밴드 상단에서 숏을 치는데 썼을 비트코인을 생각하면
1. 25,000개+ 5,000개X5=50,000개 정도가 소모되었을 거라 가정한다.
크립토마켓의 규모와 OKEX 거래소의 규모를 모두 생각한다면 하루 5,000개?(20배하면 10만개)도 과대평가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중간에 롱숏을 번갈아치면서 내려오니까 굳이 더 많은 자금은 필요없을 것 같다.
2. 최소 숏 평단가 $4250에 최대 롱 평단가 $3000 정도
일봉 상 대충 그은 선으로 어림한 결과이며 이렇게 계산기를 돌려보면,
416666BTC!
저중에 내것도 2개 있다. 나쁜 넘들 ㅋㅋ
선물거래는 손익이 BTC로만 계산되므로 제가 사용하는 비트코인 선물거래소인 OKEX만을 예로 들었습니다. BitMEX까지 계산한다면 그 규모는 가늠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쓴 글은 어떠한 사실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부실한 가정에서 출발하였으므로 재미로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