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머지않은 장래에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뭐, 그동안 교회에서 들어왔던 설교의 내용으로는, 그 사건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의 말이나 대부분의 교인들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잣대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교인들은 담임목사에게 그 문제를 일임해버렸다. 말하자면 영혼의 운명을 담임목사에게 맡겨버린 셈이다. 물론 성경지식에 해박하고 영적, 지적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니까 잘 하시리라 믿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당신이 심판대 앞에 서면, 대답해야할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1~3)
아시다시피 사데교회는 초대교회 중의 하나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구약시대의 유대인처럼 예수님에 대해 무지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다. 당시 로마당국과 유대교지도자들은 각자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신생 기독교를 박해하고 핍박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생명의 위협에 직면해야 하는 것은 물론, 고향과 직업과 가족을 다 잃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우리네 교인들처럼 손쉽게 예수를 믿었던 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믿음이나 예수님을 향한 결단은 우리네 교인들과 비교불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요한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일곱 개의 초대교회에 대해 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셨다. 위 구절도 그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이 사데교회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교인들에게서 온전함을 찾지 못하였다는 내용이다. 온전하다는 것은 완벽하다는 뜻으로, 모든 말과 행위에서 하나님의 온전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잣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모든 크리스천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잣대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위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을 마치는 마지막 구절이다. 마태복음 5장은 산상수훈으로 일컬어지는 팔복으로 시작되고 있으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생각을 품기만 하여도 지옥에 떨어진다는 두려운 말씀이 선포되어 있다. 그래서 눈을 빼고 팔 다리를 잘라내는 것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덧붙여서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돌려대며 원수조차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우리도 온전해야 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은 예수님의 명령을 충족시키며 살아가고 계신가? 다시 말씀드리자면, 완벽하신 하나님처럼 당신도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지키며 살고 계시냐고 말이다. 필자의 질문에 곤혹스러워하는 당신의 표정이 읽히고 있다. 그리고는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교회에서 들어왔던 설교로 위로를 삼고 싶어 할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므로, 우리는 그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가 다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완벽하게 살지 못하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오홋, 그런가? 그렇다면 사데교회의 교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한 적조차 없으며,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가 끊어지기라고 했다는 말인가? 이런 태도가 바로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우리네 교인에게는 예수님의 보혈로 인해 온전하게 살지 못하더라도 문제없지만, 초대교회 교인들은 온전한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네 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던 초대교회의 교인보다 탁월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판대에 서면 예수님께서 우리네 교인들에게도 완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예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았는지 물어볼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당신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일 수 있겠는가? 아니라면 당신은 심판대 앞에서 거절을 당해 지옥의 불길에 던져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 때 당신네 교회의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먹거리는 게 얼마나 웃기는 얘기가 될 것인가? 그러나 당신은 필자의 말에 호락호락 물러설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가겠느냐고 말이다. 이 말은 당신만 한 게 아니다. 사도들도 예수님께 질문한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3~26)
위의 말씀은 부자청년이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따르라는 예수님을 명령을 거절하고 떠나자 하신 말씀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며,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하다고 대답하시고 계시다.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명령에 대하 답변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5:10)
우리를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살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한 시간도 기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오늘 필자가 당신이 심판대 앞에서 대답해야할 내용을 말씀드렸으니까,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지 마시라. 당신이 애통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죄와 피터지게 싸우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결과이니까 말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