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순례길은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이 수행을 위해 걷는 길인 줄로만 알았다. 하필 그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데다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는 타입도 아니어서는 ‘여기 이 화살표만 따라 걸으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는 수수께끼같은 말을 하며 노란 화살표가 그려진 쪽빛 세라믹 타일을 기념품으로 주었을 뿐이다. 다만 순례길을 걷다가 한국인 언니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 내내 자신과 같이 다니려고 하는 바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어 마지막엔 그녀가 짐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만은 10년도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어제 마신 와인과 밤새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같이 일어났다. 살금살금 알베르게를 빠져나와 짐가방에 침낭을 돌돌 말아 넣는 내 곁에는 에릭과 아이톤이 이미 준비를 마치고 프란체스카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역시나. 어제 빠에야를 만들 때도 내내 프란체스카를 찾아 다니더니,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걷자고 아이톤이 그녀를 영입한 것이다.
캄캄한 하늘 아래 황금색으로 넘실대는 빰쁠로나의 거리에서 단체사진을 찍어 가며 사뭇 새롭고 들뜬 기분으로 출발했다.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침식사 겸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아이톤을 따라 카페에 들어가, 오늘은 어떤 마을의 어떤 알베르게에서 머물 것인지 알아보았다. 정말 동료가 생긴듯 마음이 든든하면서도, 이렇게 계속 함께 다닐 수는 없다는 우려가 들기 시작한다. 이 소속감이 언젠가는 속박이 될까봐서.
내심 아니길 바랐지만, 벽과 바위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는 여지없이 우리를 저 먼 언덕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오늘은 25키로를 걸어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여왕의 다리) 라는 마을까지 갈 것이다. 목적지만 알고 있을 뿐, 어떤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일부러 다른 사람의 경험담이나 가이드책도 읽지 않았다. 내 앞에 벌어질 일을 날 것 그대로, 오롯이 느끼고 싶어서.
경사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끝도 없이 펼쳐진 언덕 앞에서 한숨부터 나온다. 오르막은 원래가 쥐약인데, 이제는 무릎도 성치 않아 겁부터 난다. 운동을 심하게 했던 탓인지, 서서 일한 탓인지 20대에 퇴행성 관절염을 진단 받았다. 비단 손의 염증때문만이 아니라 무릎이 아파 주방일이 힘들기도 했는데, 그래서 일을 그만두자마자 이곳에 온 것이다. 무릎이 더 나빠지기 전에... 지금이 아니면 순례길을 걷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 곧 포도 수확철이라 순례길 주변에 주렁주렁 열린 포도 몇알 따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쩐지 황량한 벌판 뿐이다. 한때는 태양만을 바라보고 서있었을 해바라기는 오히려 그 뜨거운 햇빛에 다 타버린 듯 바짝 말라서는 고개를 떨구고 있다. 할 만큼 했어, 너희도.
어느새 함께 걷던 에릭과 아이톤은 점점 멀어지고, 프란체스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나를 신경쓰지 않는 그들 덕분에 나도 내 속도대로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이번 여름, 선풍기 하나 없는 주방에서 밥 대신 더위를 먹어가며 일한다고 5키로가 빠졌는데, 지금 멘 가방무게가 고작 4.5키로니 합쳐도 원래 몸무게보다 덜 나가는 셈이다. 그래선지 무릎이 아직 버틸만한 것 같길래, 사진을 찍는다고 한참 뒤쳐져 있다가 일행 따라잡기를 반복했다. 아직 생생한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중간중간에 쉬고 있는 순례자들을 볼 때마다 기운이 솟는다. 분명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힘차게 걷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들이라고 힘들지 않은 게 아니었다. ‘나는 너희보다 골격도 작은 동양인에, 퇴행성 관절염도 있다구!’ 하면서 혼자서 만들어놓은 변명이 눈 녹듯 사라진다. 왜 늘 이런 식일까.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고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은 건. 내가 못났든 잘났든, 여기서 누가 상관이나 한다고. 결국 다 나였다.
에릭, 아이톤과 물을 마시고 사진도 찍어가며 쉬고 있는데, 한참 후에 프란체스카가 도착한다. 그녀의 무릎에도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을 보고 설마 나보다 무릎이 아플까 싶었는데, 힘들어 하는 그녀를 보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누가 더 아픈지 객관적으로 표시가 나면 좋겠다. 마음놓고 엄살 좀 부려보게. 그녀는 오래 쉬고 싶다며 기어코 우리를 먼저 보냈다. 피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자기 페이스대로 걷고 싶은 마음 모두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방에 밭이 펼쳐진 완만한 언덕의 중간에 반가운 작은 마을이 보였다. 그 핑계로 화장실도 다녀오고 과일로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돌로 만들어진 작은 성당 입구에는 스탬프가 놓여있어 내 손으로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쾅 찍었다. 가방도 내려놓았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을 찾아 골목을 지나는데 아뿔싸... 대여섯명의 동양인 무리가 거리에 나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척 봐도 한국인인데, 호의보단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애써 모른척 하고 가던 길을 가는데 등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 뭐야, 한국인이야?
엄마, 아빠를 찾듯이 서둘러 에릭과 아이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한국인 집단에 트라우마같은 것이 있다. 몬타나에서도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욕을 먹었고, 뉴욕에서도 미국애들이랑만 논다고 한인 학생회에 찍힌 적이 있다. 결국엔 오해가 풀려 잘 지냈지만, 여전히 한국인끼리 뭉쳐있는 모습을 보면 위축된다. 더군다나 지금 일행도 유럽애들인데 내가 한국인인 걸 알면 또 얼마나 미움을 살까싶어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과 엮이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 멀리 보이던 풍력발전기가 어느새 머리맡에 있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는 걸 안 순간, 나도 모르게 아껴 두었던 힘이 솟아 성큼성큼 그렇게 ‘용서의 언덕’ 에 올랐다.
[산티아고 순례길 prologue] 까미노
[D-1 travel]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며
[D-1 pen] 일 그만둔지 4시간, 배낭 메고 떠나다
[1일차 pen] 죽지 않으려고 걸었다
[2일차 pen] 어둠 속에 나 혼자
[2일차 travel] 나에게도 동료가?!
[3일차 diary] 순례길의 어느 완벽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