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에겐 차가 생겼고, 어떤 이에겐 아이가 생겼다.
남들 열심히 일하고 돈버는 동안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 무엇을 더 잘하게 되었나. 통 떠오르질 않자 ‘그들이 못한 걸 했겠지’ 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한 게 있다면 여행일 것이다. 몇개 국 몇개 도시를 여행했는지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여행한 것이 경력이 된다면 내 스펙이나 이력서가 지금보단 화려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여행이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은 필사적으로 막고 싶다. 다만 외국어를 제대로 공부할 필요성은 절실히 느낀다. 이번에 영어와 일본어로 통역을 하면서 나의 어설픈 외국어 실력에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수준을 넘는다면 더 쓸모있거나 재미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주에는 단양에 다녀왔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다음 날 바람을 쐬러 가자는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한창 혼자 있고 싶던 때였으나 망설일 것도 없이 그러자고 했다. 그녀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 지 가늠도 가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주일만이었다.
오전 9시에 출발해 밤 10시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싶었던 도담삼봉에는 자자의 <버스 안에서> 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거대하고 화려했던 구인사는 중국 무협영화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 나오는 여관을 연상시켰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사람과 세상을 향한 불신과 미움이 느껴졌다. 눈앞이 이리 아름다운데, 여기까지 와서도 그녀의 마음은 감옥 안에 있구나. 누명을 써 해고를 당하고, 새로 구해 한달 다니던 직장은 그만두겠다고 단양가는 길 문자로 고한 그녀였다.
그녀에게 스펙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 물었다. 그녀의 눈이 잠시 반짝이더니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동화책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내게 해왔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일하지 않고 사는 것이었지만 그럼 너무 무료하고 무력해질 것 같다. 그렇다고 노래를 부르던 작가나 작곡가는 평생 할 자신이 없다. 영화를 다시 할 용기도 없고, 요리는 사랑하는 취미로 남는 것이 좋겠다. NASA 나 국제기구에서 일하면 마음껏 여행할 수 없겠지?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요. 라고 대답했다.
카메라 망가뜨린 지 얼마나 됐다고. 특별히 사진을 좋아해서라고 할 수는 없다. 사진을 찍으러 지구촌 구석구석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요리를 택했던 절반의 이유도 역시 여행이다. 요리하며 여행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여행이 일이 되는 것은 싫다면서 그 굴레를 벗어나지도 않는구나.
한달 쯤 전엔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아빠언니> 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패전 후 일본에서 최초의 패션잡지를 만드는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만들 잡지의 편집장이 되어 달라며 한 남자에게 거듭 부탁을 하는 장면이었다. 결국 그는 어린 그녀의 열정과 재능 그리고 그 자신의 꿈을 위해 편집장 직책을 수락한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감격하며 다짐했다.
이 잡지에 제 인생을 걸게요.
‘제 인생을 걸게요’ 라는 말과 반짝이던 그녀의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는다. 살면서 무엇에 인생을 걸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던가. 무슨 일을 하든 플랜B 라는 비상구를 만들어 두었다. 실패할 것이 두렵고 쪽팔려서 그랬다. 하필 어제 방청소를 하다 본 <아는형님> 재방송에서 강호동이 소리쳤다. ‘실패란, 시도하지 않는 거야!’
남들은 차도 있고, 집도 있고, 애도 있는 나이에 생각해 본다.
내 인생을 걸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